미래의 피해자들은 이겼다
🔖 군인과 소방공무원은 타인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위험한 자리를 찾아가는 노동을 반복적으로 하는 사람들입니다. 아무리 조심하더라도 사고를 완전히 예방한다는 것은 불가능하지요. 공동체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가장 위험한 자리에서 일하던 이들이 다쳤을 때, 그들을 지키는 것은 사회의 몫이어야 합니다. 2010년 차가운 서해 바다에서 트라우마를 겪고 11년의 시간을 힘겹게 버텨낸 생존장병들에게 상이연금 지급과 국가유공자 등록은 한국 사회가 그들의 노동에 대해 갖춰야 할 최소한의 예의인 것입니다.
🔖 역사는 후퇴할 수 있고 한국 사회는 더 위험해질 수 있습니다. 세월호 참사는 우연한 사고가 아닙니다. (...) 그것은 거대한 희생을 겪고도 그 경험으로부터 배우고 바꾸지 못해 발생한 미래입니다. 언젠가 이 글을 읽는 누군가의 삶을 앗아갈, 아직은 그 이름을 알지 못하는 또다른 참사의 과거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한국 사회가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는 방식은 피해자를 향한 연민을 넘어서야 하고, 슬픔과 분노를 소비하는 행위를 넘어서야 합니다. 김애란 작가는 <침묵의 미래>에서 상처받은 인간을 전시하는 박물관을 보여주며 이렇게 말합니다. “그들은 잊어버리기 위해 애도했다. 멸시하기 위해 치켜세웠고, 죽여버리기 위해 기념했다.” 우리는 기억하기 위해 애도해야 하고, 참사의 상처와 함께 계속해서 살아가기 위해 기념해야 합니다.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그것은 우리가 인간으로서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도 합니다.
🔖 독일 노동자와 비교할 때 한국 노동자는 일하다가 죽을 위험은 높지만 작업장에서 일하다 다칠 위험은 압도적으로 낮습니다. 국가별로 통계 산출 방법이나 산업구조의 차이가 있다는 걸 감안하더라도 이러한 수치는 앞뒤가 안 맞는 이야기입니다. 이 통계 수치들이 사실을 그대로 반영한다고 생각하기보다는 한국에서 사고가 발생했을 때 상대적으로 숨기기 어려운 사망 사건에 비해 숨기기 쉬운 부상이 더 자주 은폐된다고 생각하는 게 합리적일 것입니다. (...) 통증은 괴롭지만 제대로 고통을 인지하는 것은 생존을 위해 필수적입니다. 통증을 느낄 때 비로소 우리는 그 통증의 원인을 제거하거나 최소한 그로부터 멀어질 수 있습니다. 현재 한국 사회는 가장 위험한 곳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고통에 대해 구조적인 무감각증을 가지고 있습니다. 가장 약한 비정규직 하청 노동자들에게 절대로 아프다고 말하지 말라며 입을 틀어막고 있습니다. 그러고는 신음소리가 들리지 않으니, 정부는 아픈 사람이 없다고 발표합니다.
🔖 저는 사람들 사이의 이해관계에 따른 대립이 더욱 첨예해지기를 바랍니다. 다만 그 대립이 정치적 선동으로 인한 공허한 충돌이 아니라, 구체적인 얼굴을 가진 사람들이 살아가는 생생한 현실에 뿌리박은 갈등이기를 바랍니다. 그런 갈등이 더 많아져야 합니다. 그런 진통을 겪지 않고 생겨나는 대안은 현실에서 힘을 가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